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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조각들 



원래도 여름을 좋아했지만, 특별히 사랑하게 된 건 몇 년 전 두 해의 여름을 남프랑스에서 보내면서 부터다. 이탈리아 북부 해안에서 모나코, 니스, 마르세유, 아를 일대로 내려오는 남프랑스의 쪽 빛 해안선 ‘코트 다 쥐르’는 언제나 최고의 여름날을 선사한다.

 

처음 갔을 때는 수천 년간 이어진 해양 도시의 역사와 이민족의 다채로운 문화가 섞여서 만들어낸 이국적인 분위기의 마르세유가, 두 번째는 피카소가 본격적으로 세라믹 작품을 만들던 시기에 머물던 앙티브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백여 년 전, 피츠제럴드 부부의 별장이었던 아담한 호텔 벨레스 리브(Hotel Belles Rives)의 지중해와 면하는 프라이빗 비치에서 한없이 바라보았던 찬란한 윤슬, 학교에서 조퇴한 어린아이 같은 기분으로 마르세유 구 항구 부근 골목들을 쏘다닐 때 예고없이 끼쳐오던 낯선 향기, 고흐가 머물던 흔적이 도시 곳곳에 남아있는 아를, 대표작 <밤의 카페 테라스>의 무대인 카페 반 고흐(Le Café Van Gogh)에서 예술적 후광이 비추는 노스탤지어를 만끽하던 여름 밤의 공기, 활짝 열어 둔 창을 타고 넘어 들어오는 이국적인 말들을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하던 그 밤들. 그곳에서 보낸 기억의 편린은 여름의 조각들로 가슴 속에 남아 내내 반짝거린다.

 

어떤 도시에 가게 되면 그 도시와 연관성을 지닌 책을 고심해 골라 가는 습관이 있는데 남프랑스에 갔을 때 가져간 책이 카뮈 번역으로 유명한 김화영 교수의 <여름의 묘약>이었다. 1969년 장학금을 받아 엑상프로방스에서 유학한 저자가 몇십 년만에 다시 그곳에서 여름을 보내며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저자는 전통시장에서 고른 프로방스산 ‘카바용 멜론’에 파르마산 햄 ‘프로슈토’를 얹어 먹는 걸 가장 좋아한다며 이렇게 썼다. ‘프로방스 여름날의 타오르는 화염이 땅속의 서늘한 물을 만나 과육 속에 썩지 않는 시간의 단맛으로 스며들면, 우리의 혓바닥에서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만나 삶의 희열이 된다.' 그때의 추억은 경남 밀양이나 부여에서 택배 주문한 칸탈로프 멜론에 프로슈토를 흩뿌려 여름 술상에 올리는 서촌에서의 여름 밤으로 되살아난다.

 

그 시절의 음식이야말로 감각을 되살리는 최고의 묘약이니까.















코트 다 쥐르의 이름 모를 해변.

차를 타고 이동하다 해변이 보이면 잠시 멈춰 사람들을 구경했다.
















해산물로만 요리하는 마르세유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르 프티 니스 파세다트 바로 아래,

기가 막힌 위치의 바위 해변은

많은 이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여름 햇살을 만끽하는 명당이다.


















코트 다 쥐르의 작은 마을들에는

20세기 예술가들이 남긴 삶과 예술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고흐는 1888년부터 1889년까지 일 년 남짓

아를에 거주하며 회화 작품 2백 여 점, 수채화와 크로키 1백 여 점,

편지 2백 통을 남겼다.

 

고흐가 대표작의 배경으로 삼았던 카페 반 고흐는

예술 인생의 정점을 선사한 도시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다.
















'재즈 시대'의 총아였던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는

1925년에 앙티브에 왔다가

당시 주택이었던 벨레스 리브를 집으로 삼았다.

이곳에서 보낸 문학적 광란의 밤들은

<위대한 개츠비>를 쓰는데 영감을 주었다.

















1920년에 문을 연 생폴드방스의 호텔 겸 레스토랑

'라 콜롬브 도르'.

마티스, 샤갈, 칼더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즐겨 찾아 식사와 투숙을 하고

숙박비 대신 작품을 남겨 값진 컬렉션을 가진

비공식적 미술관이 되었다.

















마르세유의 오퍼(Auffes) 항구는 아름다운 저녁 노을로 유명하다.

항구 주변의 캐주얼한 펍 가운데 Chez Fonfon의 야외 테라스에서.

 

















전통 시장에서 만난 카바용 멜론.

 

















카바용 멜론에 프로슈토를 곁들인 에피타이저는

프로방스의 여름날을 상징하는 '단짠단짠'의 최고봉이다.




















안동선

@andongza

 

15년간 <코스모폴리탄>, <바자>등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고 현재로 프리랜서 에디터.

현대미술의 현장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움의 정의와

미식의 세계에서 온몸으로 감각한 기쁨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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