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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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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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작업실 




2020년 봄,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가구를 옮기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하고도 반이 지났다니. 이전 집과는 다르게 나만의 공간인 ‘작업실’을 꾸렸다. 이전 집에서 그림을 그릴 때는 그것이 업무이든 개인 작업이든 이방 저방 옮겨 다니며 마음이 편해지는 곳에 주저앉아 그리곤 했는데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보헤미안의 감성으로 그리니 항상 어딘가 정리되지 않은 기분이었다. (나름의 낭만은 있었지.) 그래서 항상 이사 가면 꼭 마음에 쏙 드는 작업실을 갖겠노라 다짐했더랬다. 

작업실을 위해 가장 먼저 고민했던 건 책상이었는데 이것은 기필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빈티지 가구여야만 했다. 반짝반짝한 새 책상은 흰 도화지를 마주할 때의 중압감을 몇 배는 더 늘려버릴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빈티지 가구의 인기가 높아져 가고 있었던 때라 그리 어렵지 않게 마음에 쏙 드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취향을 한데 모으고 보니 작업실 가구는 모두 나무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물기를 머금은 여름이 오면 묵직한 나무 냄새가 방 안을 채운다. 그림을 그리려 책상에 앉으면 살결에 맞닿은 눅눅한 나뭇결에 마음이 노곤해져 더 이상 흰 도화지가 두렵지 않다. 

작업 공간을 포함한 집 곳곳엔 오랜 시간 나와 함께 해온 식물들이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평균 4-5년을 함게 해온 친구들이라 잎사귀만 봐도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사이랄까. 이들이 가장 수다스러워질 때는 역시 여름이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너나 할 거 없이 앞다퉈 작고 반짝이는 밝은 잎을 내보인다. 아이고 애썼다 하며 하나씩 바라봐 주면 하루가 훌쩍 간다. 혹여 잎이 지거나 웃자라더라도 식물을 해치는 병이 아니라면 그들의 뜻대로 내버려 둔다. 그래서인지 이 친구들은 상인들이 소위 말하는 b급 형태의 모습들로 내 곁에 있다. 내 눈엔 다 예뻐라고 속삭이며 여름의 생기를 담아 넣는다.


아마 내가 식물을 좋아하는 건 아빠의 영향이지 않을까 싶은데 아빠는 항상 화초를 가꾸기를 게을리하지 않으신다. 후드둑 비가 쏟아지면 화초들 물 먹여야 한다며, 자연에서 오는 물이 건강하고 좋다며 아픈 허리는 아랑곳 않고 커다란 화분을 모두 밖으로 내놓으신다. ‘나는 아빠를 닮아서 집에 식물이 많은 거 같아’라고 아빠에게 이야기 하면 잘 올라가지 않던 입꼬리를 씰룩이시며 당신의 취향을 닮아가는 딸이 흐뭇하다는 표정을 지으신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얼굴이다. 부녀간의 짧은 대화가 끝나면 나는 다시 작업실로 돌아와서 눅눅한 나무 책상 위에 팔꿈치를 대고 아빠의 얼굴을 식물과 함께 도화지에 담아낸다. 








여린 잎이 주렁주렁 달린 커다란 나무가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린 그림.











작업실 너머로 보이는 여름에게 시선을 자꾸만 빼앗긴다.













아마도 7-80년대 생산됐을 것으로 추측되는 나의 빈티지 가구들.

테이블 위로 세월의 얼룩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이 책상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













다 쓴 물감들은 어쩐지 버릴 수가 없다.












작업실에 있는 대부분의 툴들은 내가 직접 만든 것들로 사용하고 있다.

내가 나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어 좋다.

지난 반년 동안 취미로 도예를 배웠는데 그때 만든 것들이다.












세탁실 한켠에 작은 정원을 만들어뒀다.











일주일에 한번 집에 있는 초록 친구들을 한데 모아놓고 안부를 묻는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내 도화지 위엔

수많은 햇살과 식물들이 새겨진다. 훌륭한 모델들.














김소연 | 일러스트레이터 kimu

@kimu_so

 

일상을 그림으로 기억합니다.

그림을 그릴수록 취향이 깊어짐을 느낍니다.

편안하고 안전함을 느끼며 오래도록 그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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