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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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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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준 해방감 



나는 강박관념이 강한 사람이었다. 내 기준이 너무나도 엄격해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했고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스스로를 사납게 다그치고 몰아세웠다. 다른 사람들은 저만큼 앞서가고 있는데 왜 너는 이것밖에 못 하냐고 쉬지 않고 나를 채찍질해댔다. 다 나를 위한 거라 의심치 않았지만 한순간도 마음 편한 적은 없었다.

 

이 광기 어리기까지 한 강박을 어느 정도 멈추고 내려놓을 줄 알게 된 건 태국의 더위 덕분이었다. 내 고향 대구의 더위도 만만치 않지만 태국의 더위는 어마어마했다. 특히 우기의 태국은 사정없이 내리꽂는 햇빛에 높은 습도까지 더해 태양 광선 아래 물속을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느낌이었다. 샤워 물줄기 같은 땀을 흘리며 습도와 햇빛의 콜라보에 지칠 대로 지치던 나는 어느 순간 그 굉장한 더위를 즐기기 시작했다.

 

옷차림은 간소해졌고 배낭의 짐도 줄어들었다. 갈증이 날 때에는 걸음 닿는 곳곳에서 직접 만들어주는 시원한 주스를 마셨고 넉살 좋은 총각의 과일 수레에서 달고 수분 가득한 과일들을 사 먹었다. 뜨거운 국수를 먹으며 이열치열도 해보고 정 못 견디겠다 싶으면 편의점에 들어가 구경하며 땀을 식히곤 했다. 여름나라에 와서 햇빛에 조금이라도 덜 닿으려 피해 다니고 에어컨이 빵빵한 카페에서 시간을 때우는 게 바보같이 느껴졌다. 땀이 나면 땀이 나는 대로 피부가 타면 피부가 타는 대로 더위가 나를 봐줄 리는 없으니 내가 더위 그 자체에 빠져들면 되는 거였다.

 

한국에 와서도 여름은 맛있고 즐거웠다. 날이 더우면 더운 만큼 수박을 더 맛있게 먹었고 비빔국수를 야무지게 해먹었다. 선풍기 바람도 소용없는 열대야에는 매실청을 진하게 타 얼음에 녹여마시며 몸을 식혔고 뜨거운 보이차를 마시며 부러 땀을 흠뻑 흘린 뒤 샤워할 때 느끼는 잠깐의 시원함을 즐기곤 했다. 여름이 무척 좋았다. 더위를 피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찾는 내 모습도 좋았고 나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던 엄격한 기준이 어느새 사라지면서 드는 해방감도 좋았다.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작은 실수에도 나를 다그치지 않는다. 자책하기보다는 다음을 기약하고, 타인을 의식하며 비교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새카만 내가 참 좋았다. 여름의 더위는 모든 걸 잘 해내고 싶어한 나의 버거운 욕심을 녹여냈다.

 

이번 여름에는 프랑스에 간다. 처음 가는 곳이지만 태국과 한국처럼 맛있고 즐거운 여름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어떤 여름이든 나는 즐길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곧 새로 늘어날 주근깨와 다시 새카매질 피부가 무척 기다려진다.




















더위 덕분에 달고 다양한 식재료와 메뉴들을 접한다.

눈과 입이 마구마구 즐거운 여름나라.


















해먹에 누워 앞집 아주머니의 맛있는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책을 읽는 뜨거운 한낮의 느긋한 시간.

















 


너무 더워 수영장에 갔는데 선크림 바르는 걸 깜박했던 날.

토마토 인간이 되어 한동안 꽤 괴로웠지만 웃기고 큰 교훈을 얻은날.




















과일 수레 종소리가 나면 냅다 쫓아나와 타이 멜론과 파파야를 사곤 했다.

오늘은 파파야다.

 




















중심가에서 먼 곳에 있는 조용한 카페.

가려던 참에 갑자기 소나기가 한참 쏟아졌다.

다시 앉아 따뜻한 과일 차를 주문했다.




















여차하면 입맛 잃기 쉬운 여름에는 비빔국수가 정답.



















큼직한 오이를 동동 썰어 소금과 참기름에 슥슥.


















더운 여름 호하호하 불며 먹는 갓 찐 옥수수와 감자는 

차가워도 맛있고 매일 먹어도 맛있다.

여름에 실컷 먹어야 하는 것들.


















한참 온도가 높은 낮 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발걸음이 멈추게 했던 뜨거운 볕 아래 아지랑이처럼 보이던 풍경.



















가만히 있어도 더운 여름이지만 가끔은 일부러 잔뜩 땀을 낸다.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더라.


















남지영 ㅣ 프리랜서+지읒상점 운영

@jinniejiyoung

 

여행과 자연에서 살아갈 위로를 받으며

기록하고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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